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프가니스탄 왕국 (문단 편집) === 건국 이전 === 아프가니스탄 왕국이 건국되기 한참 이전, [[아프가니스탄]] 지방은 [[무굴 제국]]을 이어 [[두라니 왕조]]가 다스리고 있었다. 그러나 두라니 왕조의 국력이 쇠퇴하자 1823년 [[파슈툰인|파슈툰계]] 두라니족 바라크자이 씨족 출신의 도스트 모하마드 칸(دوست محمد خان بارکزی)이 두라니 왕조를 멸망시키고 [[아미르]]를 자칭하며 [[바라크자이 왕조]]를 세웠고, 이를 곧 [[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]]이라고 부른다. 다만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이 세워질 당시 국제적 정세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. [[영국]]과 [[러시아 제국]]이 [[그레이트 게임]]을 벌이며 [[중앙아시아]]에서 서로 격돌하고 있었던 것. 영국은 러시아를 막고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하기 위해 [[1839년]]에 [[영국-아프가니스탄 전쟁#s-2.1.1|제1차 영국-아프가니스탄 전쟁]]을 일으켜 샤 슈자 두라니를 새 아프간 군주로 옹립하려 시도했으나 아프간인들의 격렬한 반대로 결국 패배하고 쫒겨났다.[* 참고로 이때 영국군은 몇 천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등 사상 최악의 패배 중 하나를 겪었다. 수 천명에 달하는 철수단들 중 생존자는 단 '''1명'''이었을 정도. 포로로 잡힌 영국인 여성과 아이들이 노예로 팔려나가는 등 영국은 이 전쟁으로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래치를 입는다.] 결국 도스트 모하마드 칸이 다시 아프간 군주로 복귀했고, 아프가니스탄은 [[1878년]]까지 독립을 유지했다. 하지만 1878년 [[영국-아프가니스탄 전쟁#s-2.3|제2차 영국-아프가니스탄 전쟁]]이 일어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독립도 끝장난다. 도스트 모하마드 칸의 후계자 셰르 알리 칸은 처음부터 영국데 대단히 적대적이라 영국의 심기를 건드렸고, 결국 1878년 영국이 5만 대군을 동원해 [[카불]]을 점령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의 반식민지 상태가 되어버렸다. 이당시 아프간은 왕조의 명맥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외교권을 영국에 양도하면서 사실상의 [[보호국]]으로 전락한다. 1879년 9월에 아유브 칸의 주도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 다시 독립을 찾고자 했지만 영국에게 쓸려나가며 허무하게 끝난다. 아프간 전역을 확고히 장악한 영국은 아유브 칸을 쫒아내고 압둘 라흐만 칸을 새 아미르로 앉혔다. 압둘 라흐만 칸은 그동안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던 [[하자라족]]에게 세금을 징수하는가 하면 [[누리스탄인]]들을 굴복시켰고, 아프가니스탄 정규군과 관료제를 창설해 왕조의 기반을 단단히 했다. 압둘 라흐만 칸이 죽고 즉위한 아들 하비불라 칸은 최초의 근대적 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본격적인 근대화에 나섰으며 [[제1차 세계대전]]에서 중립을 유지하면서 나름 현명한 정책을 폈다. 하비불라 칸이 죽고 나서 즉위한 나스룰라 칸을 쫒아낸 아마눌라 칸은 내부를 안정시키기 위해 영국에 반기를 들고 [[인도 제국]]을 침공했다. 이로써 [[1919년]] 제3차 영국-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. 하지만 아프간 군대가 당연히 영국에게 상대가 될 리 없었고, 아프간은 인도에서 당장 쫒겨났지만 어쨌든 독립을 되찾는 데에는 성공한다. 제1차 세계대전에서 진력이 빠져버린 영국이 더이상 아프가니스탄에 관여할 여력이 없었던 탓이 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